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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이야기/요코하마

이삿짐이 모두 빠져나간 휑 한 집안

이삿짐이 모두 빠져나간 휑 한 집안

사람 말소리 마저 울리니 더욱 휑 하게 느껴진다.

 

이사 가기로 결정하고 이러저러한 일들을 처리하고 

한국에 가서 거주할 집도 점검하고 준비하고 돌아오니 몸도 맘도 어수선하여

한동안 일손도 안 잡히고 신경이 곤두서 날카롭기까지 했다.

새로운 환경에 나를 보낸다는 것이 젊었을 적에 새로운 경험이라며

거리낌 없이 좋아라 했는데 이제는 조심스럽고 두려움 마저 앞섰다.

이를 나이탓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막상 이삿짐을 다 보내고 나니 홀가분하고 마음가짐이 새로워졌다

산뜻하게 새 출발을 하는 거다

마에무끼(前向き)!

앞쪽으로 향한다는 뜻의 이 일본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마에무끼(前向き) 마에무끼(前向き)...." 하며

내가 내게 힘을 불어넣는다.

 

 

 

거실이 휑하게 넓어지니 태윤이 할아버지는 또 태윤이 핑계를 대며

거실 가득 기차 레일을 깔았다. 

 

 

일본 첫 여성 총리가 탄생이 되었으며

새로운 내각이 발족되었다고 아침부터 떠들썩하게 알려주는 저 텔레비전

큰딸집에 있는 텔레비전과 냉장고는 우리 집 것보다 오래된 것이니 처분하고

저 텔레비전과 냉장고는 큰딸집에 보내기로 했고

전기밥솥은 작은 딸 집으로 보내기로 했고

그 외 우리 집 가전제품은 모두 폐기처분 하기로 했다.

 

1990년~1992년 2년간 일본살이를 하고 귀국할 때는 

일제가 좋다며 SONY 텔레비전과 코끼리표 전기밥솥을 사갔다.

거실에 가져다 놓은 일제 SONY 텔레비전이 흐뭇한 기분이 들정도로 

그때야 말로 일제라면 세상이 알아주던 시대였다.

그 시절엔 한국으로 귀국 이사를 할 때 온갖 일제 가전제품을 사서

이삿짐으로 실어 보내는 사람들도 그때는 심심찮게 많이 보였는데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한국에 가서 메이드인 코리아로 좋은 가전제품을 사겠다며

쓰고 있던 일제 가전제품을 다 폐기처분으로 하고 떠나겠다니...

 

시대가 이렇게나 많이 변했구나 라며 실감을 한다

 

 

 

 

 

가전제품은 다 버리고 가지만 주방 그릇장 속의 그릇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그릇만 남기고 모두 싸서 보냈다.

꼭지가 떨어져 나간 저 찜통을 보니 문득 옛 생각이 떠 올랐다.

부피가 많이 나가는 저 찜통을 한국에 두고 왔더니 막상 일본에 와서 보니

빨래를 삶을 통이 없어서 곤혹스러웠다.

그때는 아기를 키울때라서 빨래 삶는통을 저렇게 큰 통을 썼다.

일본에서 찜통을 사러 나가니 스텐 찜통이 어찌나 비싼지 살 엄두도 안 날뿐더러

비싼 새 찜통을 사서 빨래 삶는 통으로 쓰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일 년 후 한국에 들어갔을 때 만사 제치고 쓰다가 버려두고 온

낡은 찜통을 커다란 가방에 넣어서 끌고 왔던 생각이 난다

그때 알았다 빨래를 삶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흰 빨래를 삶지 않을 수가 있지? 하며

해외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참으로 부지런히 빨래를 삶았는데

그렇게 힘들여 커다란 낡은 찜통을 끌고 나왔으면서

일본에 살다 보니 나도 저들과 같이 언제부터인가 스르르 빨래를 삶지 않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어느새 대학생이 된 작은 딸이

어느 날 캠퍼스를 걸어 나오는데

"한국은 빨래를 끓인다고 해"

"빨래를 끓이면 더욱 하얗게 되고 살균이 된다고 해"

"우와 한국은 대단하다~"라고...

앞에 가는 일본 남학생들이 나누는 한국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러고 보니 엄마도 예전에 빨래를 삶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삶는 것을 전혀 본 적이 없네요'라고 딸이 내게 전화를 했다.

(이상은 2010년대 초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에서도 빨래를 삶지 않겠지요?

더러 삶은 분들도 계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