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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하늘의 방/나의 신앙생활 : 가톨릭

도쿄 도심을 걸으며 순교자의 발자취를 느껴보다

36도를 오르내리는 무더

동경 도보 성지 순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느껴보기 위하여 순례길에 올랐던 날은

 무더위가 36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이었다.

하지만 의미가 있는 날인만큼

이 무더위쯤이야 하는 다들 그러한 비장한 각오를 하고

성지 순례 길을 나섰으리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 코스는 

아사쿠사성당(浅草教会)을 출발을 하여

고덴마쵸 감옥터(小伝馬町牢屋敷跡)까지 도보로 이동하여

              닌교초(人形町) ~ 미타(三田)까지 지하철로 이동을 하고

후다노쯔지(札の辻)→다카나와 성당(高輪教会)까지

도보로 이동을 했던 순례여정

             

2024년 7월 6일(토)

 

 

 

 

 

8시 50분 아사쿠사 성당 집합 시간엄수!라는 공지

집합시간이 다가오자 성지 순례에 참가할 약 50여 명의 교우들이

 착착 시간에 맞춰 성당에 집합을 했다.

 

 

 

아사쿠사성당의 역사를 간략하게 보면

약 260여 년 이어져 오던 기독교 금교령이 폐지가 되면서

프랑스 사제를 초빙하여 1877년(明治10) 불어학교로 사용했던 개인집을

성바오로 소성당으로 명명하여 사용하다가

무사저택을 인수하여 1877년 헌당식이 거행되었는데

그곳이 현재 아사쿠사 성당이 있는 곳입니다. 

 

그 후 1889년 3월에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바오로 천주교 대성당 헌당식이 이루어졌습니다.

 

1923년 9월 관동 대지진으로 성당은 불에 타 소실되었으나

1925년 12월 20일 목조 대성당이 다시 지어져 헌당되어

다음 해인 1926년 11월 창립 50주년 축하회에서는

참석자가 18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현재의 성당은 1987년 지역 재개발 계획 일환으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견고하게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당 입구 자그마한 연못을 앞에 두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서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에서

 아사쿠사 성당의 포근한 첫인상이 느껴졌습니다.

 

 

 

.

 

 

 

안나자매님께서 에도시대 사회 분위기와 함께

순교자들이 갖은 압박과 박해를 받으면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게 된 이야기를

긴장감마저 들게 할 정도로 생생하게 들려주셔서

뒤이어 있을 순례여정이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순례에 앞서 루카주임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오늘의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사쿠사성당 앞에 함께 모여 성지 순례의 스타트를 끊어 봅니다.

 

성당 뒷뜰에 위치하고 있는 도리고에(鳥越)에서 순교한 28명 순교기념비

 

 

1613년 에도(江戸)에서 대규모 기독교 박해가 실행되었다.

2대 쇼군 '히데타다(秀忠)'에 의해 에도성의 부지 확장을 빌미로

성당과 수도원은 헐리고 말았다 (기리스탄 금교령 실시)

신도 유지(有志)와 소텔로 신부 등은 예배당을 지어 달라고 했으나 허락받지 못하여

아사쿠사의 한센병원 인근 오솔길에 몰래 초가 작은 예배당을 지어

그해 6월 29일 소텔로 신부의 손에 의해 축성됐다.

하지만 이는 곧 막부에서 알게 되었고,

예배당 건설에 동참한 신도들은 모두 에도 덴마쵸(伝馬町)의 감옥으로 보내져서

도리고에(鳥越) 형장에서 27명이 처형되고 순교했다.

일련의 이 사건을 「토리고에의 순교」라고 불려지고 있다.

 

(가톨릭 동경대교구 아사쿠사성당에서 참조)

 

 

 

 

 

 

 

 

 

 

순례자들은 신호 대기 중에 있습니다

 

 

 

 

 

짓시공원(十思公園)에 도착하여

선교분과 봉사자이신 고경훈(요셉) 형제님으로부터 

이 일대에 있는 순교자들이 수용되어 있던

에도 덴마초(伝馬町) 감옥터와 처형장터에 관하여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에도 덴마초(伝馬町) 감옥터는, 일찍이 에도에 존재했던 죄수를 수용한 시설이며

현재는 그 일부가 도쿄도 중앙 구립 짓시공원(十思公園)이며

도쿄도 지정 문화재로 되어있습니다.

 

 

처형장터의 분위기가  으슬으슬 하게 느껴지던....

 

 

 

처형장에서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사찰과 위령비

 

 

 

에도 덴마초(伝馬町) 처형장

 



 

도쿠가와(徳川川) 3대 쇼군 이에미쓰(家光)는

기리시탄(キリシタン迫害) 박해 정책을 강화하고 엄중하게 했으며

1623년 12월 4일 선교사를 포함한 신자 50명을 

덴마초(伝馬町) 감옥에서  에도 시가지로 돌리다가

이곳 후다노 쯔지(札の辻현재 타마치역 부근)에서 시나가와(品川)에 이르는

이 일대에서 화형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겐나 기리시탄 유적(元和キリシタン遺跡)

에도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家光)가 겐나 9년(元和9年)

50명의 기리시탄을 처형한 흔적으로,

15년 후에도 같은 장소에서 기리시탄이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다카나와 성당은 순교지와 가까운 성당이라는 점에서

「순교자의 모후 성 마리아」에게 바치고 있으며,

매년 에도 순교자의 기념 미사가 11월 하순에 행해지고 있습니다

 

 

 

에도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다카나와 성당 앞마당에는 '에도 순교자 현창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수년에 걸쳐 여성이나 아이, 키리시탄을 숨겨둔 사람들도 끌고 가서

이 땅에서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처형되었고,

에도 전체에서는 2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순교했습니다.
이것이 에도(江戸)의 대순교입니다.

 

 

에도 대 순교도 / 江戸大殉教図

 

 

 

다카나와 성당의 아카이와 사토시(赤岩聰) 주임신부님께서

교회를 찾아준 환영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누린다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가고 있는 이 신앙의 길이 어떤 길인지 

조용히 여러분들이 생각하실 수 있도록

오늘 이런 기회를 마련한 것입니다.

 

고찬근 (루카) 주임신부님께서

오늘 순례의 마무리로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다음을 클릭 하시면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클릭클릭

https://youtu.be/WLHU0olkfbY?si=nMOQosbzHhYSv1a_

 

 

 순례자 여러분 무더운 하루였지만

뜻깊은 시간이 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