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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이야기/생활 일기

내 나라 내 고향에서 하룻밤을 묵다 / 영주 선비촌

태풍이 오락가락하는 이즈음

한국에 입성하려 했던 날이 태풍의 영향권에 든다 하여

우리가 예약한 한국행 비행기가 결항을 했다.

짐을 다 챙겨놓고 야속한 태풍으로 인하여  주저앉아 하루를 멍하게 

보낸 안타까운 하루였다.

하지만 한국나들이는 출발이 하루가 늦어진 만큼 더 큰 기대와 설렘을 주었다.

인천공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미끄러지듯 가뿐하게 서울역에 도착하여

 KTX로 갈아타고 친정형제들과의 약속장소인 영주근교 풍기역에 도착을 하였다.

참으로 쾌적하고 깔끔한 교통수단 덕분에 장거리인데도

미처 피곤함을 느껴볼 겨를도 없이 어느새  KTX는 풍기역 홈에 들어서고 있었다.

일 년 만에 만나는 친정형제들과의 만남도 충분한 설렘이지만

고택으로 조성된 마울인 선비촌에서 하룻밤을 묵어 본다는 것이

내게 있어서는 아주 큰 설렘이었다.

그러한 설렘이 있었기에  KTX로 고향으로 달리던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두근두근 즐거운 시간이었다.

 

자동차를 주차시켜 놓고 개찰구까지 내려와 목을 쭉 빼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 오른다.

'너는 내 동생이 아니라 나의 딸 같다'는

14살 나이차가 있는 큰언니의 말은 언제나 나를 심쿵하게 한다.

 

 

 

 

 

거의 일 년 만에 만나 건배를 나누는 식사자리

나를 기다려주는 이분들이 계셔서 나의 한국행은 늘 의미가 있고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앞에 앉으신 작은 형부께서는 요즘 건강이 아주 안 좋으시기에

가족모임에 나올 형편이 아니었지만 힘내서 가족 모임에 나오신

형부를 뵈니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형부는 내가 단발머리 중학생일 때 우리 집 작은언니와 결혼을 하여

나의 작은 형부가 되셨는데 처제가 너무 어려서 형부는 처제라기 부르기보다는

희야라고 부르시며 만날 때마다 용돈도 늘 두둑이 집어 주시며

얼굴에 늘 웃음이 가득한 분이셨는데

이제 형부에게는 그러한 모습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얼굴 가득한 병색으로 인하여 흘러가버린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선비의 고장 '영주'

 

 

이곳 영주 선비촌에서 하루를 묵었다.

안동에 사는 작은 언니가 준비해 온 안동식혜와 닭발조림은

언제 먹어도 감칠맛 나는 언니의 멋진 솜씨다.

그런데 이 식혜를 안동식혜라고 했다 하여 영주 사랑 오빠의 흥분 시작!.

"이러한 식혜는 영주에서도 만드는데 왜 식혜 앞에 꼭 안동이라고 붙이냐고!"

아이코 또 시작하는구먼 ㅋㅋㅋ

영주 애향심이라고 하면

'오빠 따라 올 사람 아무도 없으리라'며

우리는 웃었다.

 

 

 

 

선비촌에서의 아침이 밝아왔다

옆에서 자고 있는 언니를 살금살금 깨웠다.

"언니, 아침 산책 나가자~"

 

 

포스팅에서 이러한 장독대를 볼 때마다  향수를 느끼곤 했었는데

이젠 나도 이렇게 드디어 장독대를 마주하고 사진을 찍게 되다니...

그야말로 감개무량이다

 

 

 

뽀얀 초여름의 수국이 아침공기를 더욱 상쾌하게 해 준다

나는 티벗 님들의 사진으로 고택이 있는 풍경을 볼 때마다

이른 아침에 이러한 고택이 있는 마을을 산책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했었는데

오늘은 그야말로 내 바람이 이루어졌다.

새벽마실을 나서서 옛 마실 분위기에 취하여 솔방솔방.....

그야말로 이것이야말로 힐링의 시간이다.

 

 

 

 

아무도 없는 고요하기 그지없는 고택

마치 우리 할아버지 집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자연스럽게 마당에 들어서

이방 저 방 기웃기웃

 

예전에 외가 어디선가에서 이러한 사랑채를 봄 직도 한데....

이곳에 서서 기억에도 없는 외할아버지를 억지로 떠 올려 보기도 했다.

 

 

다음은 또 어떠한 고택이 있으려나 

고택을 찾아 걸어보는 아침 산책길 

 

 

이 고택도 영주시 이산면에서 옮겨온 고택이라고 한다

이산면에 양반이 많이 살았나 보다 고택이 많은 것을 보니....

참으로 훌륭한 고택이다.

 

 

 

툇마루를 보니 까마득하게 멀어진 할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사랑방 앞에 놓여있던 툇마루가 떠 오른다

 

 

 

 

배롱나무 꽃으로 인하여 선비촌은 더욱 그윽하고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많은 고택을 이곳으로 이축을 하여 멋진 선비촌으로 조성이 되어

이렇게 관리가 잘 되고 있음에 실로 감동을 했다.

 

 

 

담장 밖에서 들여다 보이는 안뜰이 실로 아름다운 풍경임에 

언니와 함께 감탄사를 솥아냈다.

 

 

 

선비촌에서 나오니 이렇게 소수서원(백운동서원)으로 이어진다

멋진 연못과 은행나무가 운치에 운치를 더하고 있다.

 

 



 

주세붕은 '경敬'이라는 한자를 바위에 새겨 남겼다.

敬자는 선비의 덕목을 나타낸 글자로

공경과 근신의 자세로 학문에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더불어 안향을 공경하고 기리는 마을을 후대에 전한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취한대

취한대는 자연을 벗하며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곳인데

퇴계 이황이 터를 닦고 취한대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는 송취한계에서 따온 것으로  푸른 산의 기운과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의미라고 한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소수서원은 1541년(중종 36) 7월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1542년(중종 37) 8월에 이곳 출신의 성리학자인 안향()을 배향()하는

사당을 설립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543년 8월 11일에 완공하여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고,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을 같은 해에 설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펌)

 

 

 

 

 

 

우리가 묵었던 김문기 가옥

 

 

담장 밖에서 들여다보니

영주 애향심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애향심이 깊은

영주사랑 오빠의 선비촌 고택에 대한 설명이 한창이다

 

오빠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는 큰 형부와 이 집 셋째 사위 윤서방

 

 

 

짐 꾸려서 나오는 큰언니

 

 

 

 

우리가 민박으로 사용했던 김문기가옥이다

실내는 민박객들이 쾌적하게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현대식으로 

화장실과 샤워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영주시 부석면에서 이축을 해온 것이란다.

 

 

 

이제는 아쉬움이 가득한 떠나는 시간

 

 

 

 

 

해가 떠 올라 선비촌을 화사하게 불 밝혀주는 듯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영주 선비촌이었다

 

 

 

 

 

소수서원에서 짐을 챙겨 나와 아침을 먹기 위해 영주 시내로 나왔다.

개업한 지 30~40년(?)이나 된다는 복어집으로 오빠가 우릴 안내했다.

 

이렇게 콩나물 무침과 먹어야 제격인가 보다

주인아주머니께서 바로 옆에 서서 영주 사투리가 섞인  정스런 말을 해가며

콩나물을 무치더니 이렇게 한 그릇 담아주셨다.

 

 

간밤에 술을 많이 하셨으니 다들 "캬~ 좋다~"하시며

국물을 후룩후룩 맛있게들 드셨다.

역시 해장에는 복지리인가보다

 

 

철탄산아래 웅장하게 서있는 나의 모교 영주초등학교

그때는 정말 웅장하게 보였는데 지금은 이리 작아 보인다

그때는 영주에서 가장 큰 학교였는데

올해는 입학생수가 한 명도 없어서 이웃학교에서 학생들을 빌려왔다고...

이럴 수가! 이러하니 폐교라는 말까지 나오는구나 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영주시민들의 노력이 있어

영원히 폐교는 되지 않을 것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100년 학교] 졸업생 1만 8808명, 110년 역사 명문교… 영주초교

라고 ' 매일신문 입력 2023-01-15'  기사가 있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