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무슨 날인지 아나?"
'무슨?? 아, 결혼기념일....'
중요한 기념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까 봐
나는 얼른 말꼬리를 감추었다.
예전에 결혼 1주년을 앞두고 그때도 남편이 내게
"내일 무슨 날인지 아나?"라고 물었었는데...
순간 결혼 1주년을 앞둔 신혼시절의 우리의 모습이
슬그머니 오버랩되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남편은 한마디 더 덧붙였다
올해가 벌써 40주년이네 라며
여의도에 저녁을 예약해 두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집 가까운 곳에서 간편하게 런치로 하지 무슨..."
하다가 이럴 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상책이지 하며
얼른 나의 반응을 뒤집었다.
게다가 40주년 기념 반지를 해 주겠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잽싸게 반지보다는 목걸이가 좋은데 하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양보다는 선택을 챙겼다. 후흣!
지난 40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남편의 이러한 서프라이즈에
기억 한쪽 언저리에 쌓여 풀석풀석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던
그간의 각종 섭섭함과 서운함, 미움....
그 모든 것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
역시 이 여자도 분위기에 약하구나

저녁 예약 시간보다 일찌감치 여의도에 나갔다.
남편이 예전에 여의도에서 근무하였기에
남편은 감회가 새로운지 건물을 쳐다보며 그 시절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는 3살이 된 큰딸을 데리고 이곳 여의도 광장에 와서
자전거를 타기도 했는데 그 광장이 이제는 이렇게 나무가 가득한
숲으로 달라져 있었다.

오늘은 내 가 어쩌다 보니 검은색 룩으로 차려입고 빵강색 양산을 쓰고
여의도 숲을 걷게 되었다.
남편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카메라 앵글 속으로
빨강양산의 여인이 나타나 주기를 바랄 때가 많았다
얼마 전에 작은 딸이 생일 선물로 양산을 사주겠다며
'무슨 색깔이 좋아요?' 묻길래
앞뒤 잴 것도 없이 바로 '빨강이 이쁘네' 하였기에
선물로 받게 된 빨강 양산이다.

그 옛날 서울에서 최고의 높이를 자랑했던
63 빌딩 59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이다
한강이 눈아래 훤하게 펼쳐져 있었다
한강이 이렇게 아름다운 강이었구나
서울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때마침 서녘으로 넘어가는 강한 햇살로 인하여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한강풍경 사진이 선명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실력 탓이 아니라 연장 탓을 하다니....









드디어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골든타임이 되었다

그 타이밍을 놓칠세라 후다닥 와인잔을 찾아들고 건배까지 하며
우리는 참으로 재미나게 잘도 놀았다.



그리고 여의도의 밤이 이렇게 아름답게 익어갔다.



레스토랑 측에서 준비해 준 40주년 기념 케이크

그리고 서프라이즈!
우리 앞에 가져다 놓은 접시에 그들이 불을 붙였다
푸른 불꽃으로 활활 타올랐다
다 타오르자 스푼으로 살살 태운 머랭을 걷어냈다
그곳에서 동그란 아이스크림이 나타났다
그들은 박수를 치며
40주년 결혼기념일을 축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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