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사이토상이라고 타이틀을 쓰긴 했는데
사실 사이토상은 나보다 훨씬 연배이신 77세로서 완전 큰언니뻘이다
하지만 예전 살던 동네에서 친구처럼 지낸
둘도 없는 일본 친구이다.
사이토상 남편분께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기에
병원 근처에 찾아가서 런치를 먹으며 자초지종 이야기도 듣고
네즈신사(根津神社)에서 산책을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된곳은 스포츠 헬스장에서였다.
도쿄 도심에서 살다가 외곽지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 있는 헬스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벌써 10년도 훨 지난 이야기이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낯선곳인데다 일본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외국인으로서 내가 먼저 선뜻 나서서 말을 걸기엔 조심스럽기도 하고
사실 용기도 없었다.
하니 그저 내 운동이나 열심히 하고 끝나자마자 쌩하니 헬스장을 뒤로하고
빠져나오곤 했었다.
어느 날 에어로빅을 으쌰으쌰 끝내고 스튜디오를 막 나가려는데
옆에 서서 에어로빅을 했던 그녀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짧은 목례와 함께 스쳐 지나가듯 인사를 하길래
나도 "수고하셨습니다~" 짧은 답례를 하고
우린 각자 스튜디오를 바삐 빠져나가며 뿔뿔이 흩어졌다.
그녀는 함께 운동을 하고 난 후 예의상 옆사람에게 수고했다는
짧은 인사를 한번 건네었을 뿐인데
나는 아는 사람 한 사람 없는 낯선 곳 외국 사회에서
내게 말을 걸어준 단 한 사람이 생겼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내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헬스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녀가 뒤이어 후다닥 엘리베이터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서로 짧은 목례를 했다
그녀는 나를 기억 못 했지만 나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내가 재차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나를 휙 쳐다보는 그녀에게 나는 쌩긋 웃으며
"나는 한국사람이에요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모르는 점이 많은데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더니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엄청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어머! 한국사람이세요? 나는 일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일본사람인줄 알았다니
그동안 내가 운동을 끝내고 한마디 인사도 없이 쌩하며 나가버리곤 했으니
인정머리가 없는 여자라고 어쩜 다들 생각했으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후 입소문으로 한국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졌겠지만
말없이 다녔으니 단순히 일본말을 잘 못하는 한국사람이로구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 단지 주눅이 들어서 그들과 마주치지 않고
그저 운동만 열심히 하고 빠져나온 것뿐이었는데...
후훗 그 시절 그때 생각을 하면 풋하며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그 후 사이토상은 에어로빅이 끝나기만 하면 내게 다가와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한국에 대하여 궁금한 점도 물어오고
한국드라마 열광 팬이라며 한국드라마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런치를 한번 하자는 약속을 했고 드디어 런치를 하게 되었다.
런치 때 그녀는 몇 장의 사진을 가지고 나왔다.
1970년대 말에 남편이 한국에 주재원으로 나갔기에
서울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그때 박대통령 저격사건이 있던 그날
출산을 했는데 큰딸이 총소리를 들으며 태어났기에
큰딸은 아주 강한 아이로 자랐다며....
참으로 어수선하던 시절에 한국생활을 했기에
그 당시 숨 가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기도 했다.
그 후 88 서울올림픽 무렵에 다시 서울 주재원으로 갔을 때는
서울이 엄청 발전을 하여 몰라보게 달라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시절 한국 가곡을 배워서 치마저고리를 입고 합창을 했던 사진과
그 무렵 KBS에서 일본어 초급을 가르칠 때 사진이라며 보여주셨는데
뽕이 들어간 블라우스에 긴플레어 스커트 차림 그리고
단정한 헤어스타일의 그녀는 마치 KBS 아나운서 같은 포스에다가
젊었을 때의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옛이야기를 쏟아내느라
런치 때 만났는데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 후 헬스장에 가는일은 운동 하러 간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사이토상을 만나러 가는 즐거움으로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후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만나는 것이 위태위태 해졌지만
어딜 나다닐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보니 더더욱 헬스장으로 다들 모였으며
급기야 헬스장 사람 10명이 새로이 탁구 클럽까지 결성을 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신나게 공을 쳤으니
우리 사이는 코로나시기에도 함께 모여 어려운 시기를 함께 잘 넘겼다며
무슨 동지나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 정도로 정이 더 돈독해졌다.
사이토상을 알게 된 지 10년으로 정이 무르익을 데로 익었는데
나는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다.
탁구 팀원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여 이별의 지짐이 파티를 했는데
사이토상은 음식을 한 가지 해 오겠다며 잡채를 만들어와서
나를 감동시켰던 그날이 선하게 떠 오른다.
사이토상은 나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작년여름엔 나가사키 고토여행도 함께 가서 많은 성당을 순례하며
3박 4일 룸메이트로 지내며 우린 좋은 추억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일본사람들은 언니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사이토상~이라고 성을 부르기 때문에
그 영향도 어쩜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서로 "김상~" "사이토상~"이라고
부르다 보니 친구같이 허물없이 지냈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도 만나면 언제나 즐거운 사람이었으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깔깔깔 소리 내어 웃어주니
내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가 있나? 하며 내가 오히려 놀랄 때가 있다.
어느 날 나와 사이토상을 알고 있는 지인에게
'사이토상은 항상 밝고 잘 웃기에 만나면 참으로 즐거운 사람'이라고 했더니
두 사람 다 똑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하네 하며
사이토상은 김상이 그렇다고 하던데 라며 웃는 것이 아닌가 후훗
사이토상이 웃으며 이야기를 잘 들어주니
내가 더 신나게 떠드는 것 같아라고 했다.
지난번 살던 지역에서
사이토상이 있어서 내 생활은 즐거웠으며
코로나 시기에도 사이토상 덕분에 좋은 시간으로 잘 보낼 수 있었기에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다시금 든다
"사이또상 아리가또 (고마워요)~~ "
네즈신사(根津神社)에서 사이토(斉藤)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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