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 내릴까 말까 하는 눈이지만
눈이란 본래 이렇게 내리는 것이지 하며 마치 본때를 보여 주는 것처럼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주는 듯
그렇게 펄펄 끊임없이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베란다 창으로 내다보니 환하게 불 켜진 가로등 아래로
펄펄 흩날리는 풍경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나 됨직한
어디선가 많이 본 풍경처럼 보였다 좋았다.
눈을 보며 다음날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눈뜨자 말자 사진 찍으러 나섰는데
에게게 이게 뭐야! 눈이 녹아서 질척 질척했다.
영상 3도의 아침 기온이었으니 야속하기 그지없다
아파트 주변 사진 몇 장만 찍고 들어왔다.
딸이 볼일이 있다고 태윤이를 내게 부탁을 하고 나갔다.
우리 태윤이 눈구경이나 시켜 줄까 하며
아기를 데리고 아파트를 나섰더니
이 웬일! 비까지 내리시네
구석에 눈을 쓸어 모아둔 곳에 가서
한 움큼 눈을 집어 들고 태윤이를 데리고 실내로 들어왔다.
비가 내리니 눈 구경은 못하겠고
눈을 만져보게라도 해야겠다며...
태윤이는 처음 보는 것에는
절대 덤벼 들지 않는 참으로 조심하는 아기다
눈 뭉치를 내주며 "만져봐 눈이야 눈~" 했더니
이렇게나 조심스럽게 슬쩍 건드려 보고 있다
촉감이 차서 눈이 동그레 지며 놀라는 듯하더니..
다음엔 손가락 모양을 저렇게 하여
눈을 또다시 건드려 보고
이렇게 눌려 보기도 하고... ㅋㅋ
그러다가 눈을 훅 밀어 내자
눈이 쭈르륵 미끄러져 나가니
그때서야 재미있다고 까르르 소리 내어 웃으며
눈을 이리 밀었다가 저리 밀었다가....
눈놀이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https://youtube.com/shorts/DD_McSoQrKk?si=g1aEqPdWxHMrDe94
눈놀이에 재미를 느끼고
새로운 단어 '눈'도 알게 되었다는...ㅎㅎ
갑자기 밖이 웅성웅성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꼬마들로 인하여
고요하던 아파트 광장이 웅성웅성하여 사람 사는 동네 같아졌다
역시 꼬마들 재잘거리는 소리는 참으로 듣기 좋은 소리다
학교에서 나올 땐 우산을 들고 나오던 꼬마들이
이제는 하나둘 우산을 접고 있다
비도 그친 것 같고 놀 준비를 하나보다 ㅎㅎ
아파트 내 한쪽 구석에 겨우 이 정도의 눈도
꼬마들에게는 즐겁고 귀한 눈이라
꼬마들이 눈이 있는 쪽으로 몰려다녔다.
그런데 내리는 비로 인하여
이 눈 마저 멸종 위기에 처해졌으니....
질척한 눈이지만 그래도 눈은 눈이고
눈이 내렸다는 그 자체가 꼬마들에겐 즐거움이다
아구~ 이 딸내미는 꼬마 눈사람을 만들어
손수건으로 싸서 들고 있네
태윤이도 밖으로 나가
누나들에게로 갔다
꼬마들에게 아기는 오늘 눈을 처음 본다고 첫눈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어머, 그래요?"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ㅎ
낯선 누나들 틈에서
갑자기 얌전하고 의젓해진 태윤이다
첫눈 내린 날
동네 누나들과 예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네
어느새 불과 얼마 안 되는 눈이었지만
꼬마들이 눈을 긁어모아 어느새 꼬마 눈사람을
이렇게나 많이 만들어 놓고 갔다
밤새 많이도 내렸을 텐데
따뜻한 봄비에 그야말로 눈은 눈 녹듯이 스르르
흐물흐물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하루 지난 오늘은 봄볕이 완전 쨍쨍한 날이었다
이젠 그나마 귀퉁이에 남아있던 눈마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귀한 눈
한차례 눈 꿈이라도 꾼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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