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 '매화 축제 라고 해서 갔더니...'의
후속 편입니다.
매화사진을 찍기 위해 오로지 좋은 사진 한 장 건져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 점은 남편 이야기입니다 ㅎㅎ)
집에서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오메(青梅)라고 하는 곳까지
그것도 사람 없는 아주 이른 아침을 겨냥해 달려갔는데
그곳 매화는 아직도 나뭇가지 속에서 깊은 잠에 들어 있었으니
좋은 매화사진이 필요한데... 하며
남편은 이만 저만 실망이, 아니 낙담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매화원을 터덜터덜 걸어 나오며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기는 너무 이른 시간이고
근교에 뭐가 없을까 하다가 '쇼와기념 공원(昭和記念公園)'으로 가 보자며
원하는 매화사냥에 나섰다.
건질 수 있으려나....

"어서 오세요 이곳은 쇼와 기념 공원이랍니다"
옅은 봄바람에 살랑이듯 인사를 건네오는 노란 수선화가
움츠려 있던 기분에 따뜻한 봄기운을 훅 끼얹어 주니
입가에 미소와 함께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반가움!
"오호, 수선화 너 너로구나"

어디선가 달려 나오는 아이들
어머! 근교 초등학교에서 무슨 행사가 있나 봐
아하, 그러고 보니... 옛 생각이 떠 올랐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일본에는
각 유치원, 학교마다 마라톤대회가 열린다는 것을!
이 마라톤 대회가 끝이 나면 봄방학에 들어가더라는...

타임머쉰을 타고 30여 년 전으로 슈슝~~
빨강 모자를 쓰고 억척스럽게 달려와서 해 냈다는 늠름한 표정으로
가뿐 숨을 몰아 내쉬며 앙증맞게 웃어주던 작은딸의 모습
그리고 분홍 유치원 모자를 쓰고 일치감치 달려와 도착 깃발 아래 앉아서
골인지점으로 달려들고 있는 친구들에게 의기양양하게
하얗게 마른 입술로 간바레를 목청껏 외쳐 주던 큰딸의 모습
달리는 저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나의 어린딸맹이들이 오버랩되어 나타났다
아 그리운 그 시절이다.

와~ 은행나무 길이네
앙상하게 말라있는 우람한 가로수를 보며
노란 길이 될 가을날을 상상하며 가을에 꼭 다시 와 봐야지 하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인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것은 무슨 조화냐고

가슴 확 트이는 따사로운 풍경과 함께 내 앞에 화들짝 나타난 부부
먼 후일 우리 부부의 모습으로 비친다
아니! 먼 후일이 아닐 텐데??
이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이렇게 나는 이따금씩 우리는 여전히 청춘이라고 착각을 한다.
정신 차려라 저 풍경이 곧 우리의 현실이란다
남들이 보면 우리도 저러한 풍경이 된다는 것을!

걷자
드넓은 공원을 아무 생각 말고 그냥 걷자
파릇파릇 올라온 연둣빛 새싹들이 내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벚꽃나무가 이렇게나 우람하게 서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나뭇가지 가득 맺힌 벚꽃을 그려보며 불과 얼마 남지 않은
벚꽃의 개화 예상일을 손꼽아 본다...
도쿄의 벚꽃 예상일이 3월 22일이라고 했던가
올해는 또 벚꽃은 얼마나 멋진 풍경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줄 것인가
우리는 또 어느 곳으로 달려가서 벚꽃놀이의 즐거움을 만끽해 볼 것인가

파릇파릇한 이 새싹 속에서 아롱이다롱이 얼마나 이쁜 꽃들이
얼굴을 내밀 것인가
향기로운 봄 풍경에 나는 또 '봄은 참 이쁘다'라는
감탄사를 얼마나 쏟아 낼 것인가

하늘에 구름도 두리 두둥실 흘러가며
벚꽃세상이 될 그날을 기대하며
구름도 나도 힐끗힐끗 앙상한 벚꽃나무를 염탐하고 있다.

와, 이곳엔 매화가 피어있네
이 길로 가보면 매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야
길이 이끄는 데로 가 보자고~
이곳에 와서 보니 다들 가벼운 옷차림이구만 나 혼자 한겨울이다
나는 겨울추위는 대체로 강한 편이지만
오슬오슬한 봄추위는 상당히 취약하여 어떤사람은 블라우스 차림으로 나타나는데
혼자 패딩을 입고 나타나곤 했다.
어서 오슬오슬한 계절이 지나 여름이 오면 나는 해바라기처럼
여름을 아주 좋아하고 여름더위에 강하다..
후훗! 여름더위에 강해서 어쩌라고??
이 웬일?
매화 보러 와서 이야기는 삼천포로 흘러 나가고 있데

분홍 노랑 하얀 꽃들이 함께하는
환상의 풍경이라며 남편이 거기 서보라고 한다
거기서!라는 말과 동시에 나는 돌부처가 되는 기분이다
자연스러운 포즈는 물 건너갔다
시니어 사진모델 수업이라도 받아야 하나

하늘도 이쁘고 이곳 풍경이 너무나도 고향스러워서
이 자리를 맴맴 돌며 사진을 찍고 또 찍고...
그야말로 예쁜 봄동산이다

이 풍경을 더 정스럽게 만들어 주었던 것은 이분들
연세 지긋한 두 분이 얼굴 가득 웃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며
화폭에 봄을 담고 있었다.

좋은 취미, 좋은 벗, 좋은 날씨
삼박자가 척척 호흡이 맞았다는
최고의 날이 아니겠는가

너무 더워서 패딩을 풀어 젖혔다
이제 겨울패딩은 옷장 깊숙이 치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3월 들어 날씨가 돌변하여 그야말로 봄날씨는 변덕스러운 여자 마음 같다더니
날씨가 종 잡을 수 없이 변덕을 부리는 요즘이다
어제도 나는 이 겨울 패딩을 입고 나갔다.

봄이 오고 있는 이 자연스러움이
나는 참으로 좋다

봄이 오는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시원한 분수가 내 머릿속을 시원스레 식혀 준다

쏟아져 내리는 분수소리가 숲 속의 쫑쫑거리는 새소리만큼이나
좋은 소리로 들려오고 물색도 참으로 이쁘지 않은가

때늦은 점심,
전철을 타기 전에 뭔가 먹고 가야 하지 않겠어?
타치가와(立川) 역 주변을 기웃기웃
그러던 중 남편과 만장일치로 선택한 스시!

카운터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완전 가족적인 분위기
스시를 만들어 주는 요리사와 마주 보며 나누는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는
낯선 동네 낯선 음식점이지만 스시맛을 일품으로 더해준다.

전철에 오르기 전,
오늘 이 스시집을 선택한 것은 우리의 탁월한 선택이었어
하며 남편과 나는 엄지 척! 했다
'공원 > 기타 공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화 축제 라고 해서 갔더니... (39) | 2025.03.07 |
---|---|
잘 키운 나무 한 그루, 열 나무 안 부럽다 (47) | 2025.03.03 |
후지산이 보이는 매화 숲에서 우동을... (53) | 2025.03.01 |
매화를 제대로 맛보다 / 오다와라(小田原) (46) | 2025.02.27 |
도쿄 도심 공원의 나른한 정오의 풍경 (39) | 2024.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