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가마쿠라(鎌倉)
그래, 다녀오자며 길을 나섰다.
비를 맞으며 함초롬히 서있는 수국이
그지없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우산을 쓰고 나도 저렇게
북쪽 가마쿠라 동네를 걸었다.
내놓은 화분이 많아서 꽃집인 줄 알았더니 ㅎㅎ
상호도 그러하고, 내놓은 물건을 보니
일본 전통 대중목욕탕에서나 있을법한
나무로 된 목욕 용구 의자, 바가지, 세수대 등이 보인다.
아직 연꽃이 피자면 멀었나
연못에 연잎만 그득하다
하긴 아직 연꽃을 기대하기는 이르지
여름방학이 무르익을 즈음이면 피려나
어릴 적 여름방학이 되면
연꽃이 가득한 연못이 있는 외가에 놀러 가는 것이
아주 큰 즐거움이었다
외가 동네어귀에는 이렇게
동네의 자랑거리인 연꽃이 가득히 피어있는 넓은 연못이 있다
그리고 그곳엔 정자가 있어 동네 어르신들이 나오셔서 쉬고 계시는데
동네를 들어오는 사람이나, 나가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정자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지나가곤 했다.
우리처럼 타지에서 들어가는 사람들도 정자에 어르신이 계시면 자진해서
어르신들께 가서 인사를 드리며 누구누구 집에 오는 길이라고 하면
아하! 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시곤 했다
어르신 들께서는 우리 집 왕언니나 오빠는 인사를 드리면 알아보시지만
나 같은 조무래기들은 구체적으로 자기소개를 할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인사도 건성건성으로 하고 늘 언니뒤에 묻혀서 통과하곤 했다
혹 동네 길을 가다 어르신을 만나게 되면
누구누구 동생이로구나라고만 하셨지 내 이름은 물어보지도 않으셨다.
이것이 막내의 설움이라면 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후훗 연못에 가득한 연잎을 보며
옛 추억의 옛 어른들을 떠 올리고 있다.
이젠 나의 언니 오빠들도 다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고
옛 어른들은 이젠 다들 떠나시고 안 계시는 그곳
어릴 적 추억이 가득한 그리운 외가 동네의
연꽃은 지금도 여전하려나...
연못을 한 바퀴 휘~도는데
동선이 나와 같아서 앞서 서니 뒤서거니
뜻하지 않게 함께 한 바퀴 동행을 하게 된 인연
나도 저 사람처럼 하얀 머리로 배낭을 메고
7학년이 되고 8학년이 되어도 저렇게 씩씩하게
이 동네 저 동네 걸어 다니며 사진도 찍고.....
바삐 총총총 걸어 나가시는 저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꿈을 꿔본다.
연꽃밭 저 너머로 내가 단골이 되어 가곤 했던 우동집이다
창가자리가 비어 있는 것 맞지? 하며
카메라 줌을 쫘악~ 당겨본다.
맞네 맞아 비어있네 하며
갑자기 발길이 바빠진다
재차 자리 확인을 하며
모퉁이를 돌아 우동집으로 후다닥
반갑게 나를 창가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카메라도 내려놓고 모자도 벗고
시라스 냉우동을 주문했다.
나만의 멋진 런치시간이 주어졌다.
디저트로 시원한 단팥죽도 먹어주고...
연잎 위에 빗물이 톡톡 떨어져
떼구루루 굴러가더니 연못 속으로 퐁당하더라고
쓰루오카하치반구(鶴岡八幡宮)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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